중국 농업시장이 열리고 있다.
식량안보를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온 중국이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이농현상 심화, 축산물 소비 증가에 따른 사료곡물 수요 급증 등으로 인해 식량수입 의존도가 빠르게 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에 따라 중국내 식량 공급을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2013년 제1문서(number one document)’를 통해 중국 농업의 효율성을 드높이고 대규모 상업농으로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토지소유권 이전 가속화 정책을 내놓았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펴낸 ‘해외곡물시장동향’에 따르면 중국 정부 관계자들은 올들어 잇따라 중국 공산당이 최우선 의제로 삼아온 식량자급자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중국 정부가 당초 농업 5개년 계발계획에서 목료로 삼은 2015년 농산물 자급도 95%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해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중국의 식량수입량이 전체 식량 소비량의 12%에 달했다. 2012년 중국의 옥수수 수입량은 전년보가 197% 늘어난 520만톤, 밀수입량은 전년보다 195% 증가한 369만톤으로 8년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지난해 중국의 무역업자들을 중심으로 품질이 낮은 베트남쌀을 섞어 파는 성행하면서 쌀 수입량 또한 크게 불어났다. 이로 인해 중국은 2011년이래 쌀·밀·옥수수의 순수입국으로 전락했다.
중국의 이농현상은 매우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1978년 중국 정부가 현대화 정책을 내놓은 이래 2012년말까지 2억6,000만명에 달하는 농민들이 도시로 이주했다. 중국 통계국에 따르면 1982년~2010년간 중국의 농촌인구는 8,000만명이 줄었다.
중국의 소득 증가는 육류, 유제품, 달걀 등과 같은 축산물 소비를 부추겨 주요 곡물생산량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옥수수, 대두 등 사료곡물의 수입을 늘리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곡물 수입량은 전년보다 157%불어난 1,398만톤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중국 국무원발전연구중심(Developement Research Center) 한준(Han Jun)소장은 최근 열림 포럼에서 “인구가 13억명인 국가가 전체 농산물 공급을 자국 생산에만 의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곡물에 대한 식량안보와 주요 농산물의 공급량을 확보하는 것이 곧 자급자족으로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옥수수 수입규제를 완화하고 면화 설탕 대두의 공급은 세계시장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중국 정부는 식량의 안정적인 생산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지 않다.
주식인 쌀과 밀은 자급자족을 목표로 하면서, 사료용 곡물 수입은 늘리는 수급정책을 취하고 있다.
중국 농업부는 중국이 세계 1위의 쌀과 밀의 생산·소비국이지만 교역량은 크지 않다면서 지난해 쌀 수입이 늘어난 것은 자국내 쌀 수매가격 인상에 따른 가격차이로 인해 빚어진 일이라며 쌀과 밀의 자급을 낙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3년 제1문서’에서 수입할당제를 강화해서 옥수수 대두 유채 면화 설탕 등의 수입을 늘리면서도, 식량공급 기반 확대를 위해 협동조합을 비롯한 대규모 상업농 위주의 농지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현재 마을단위로 등록하는 토지등록체계를 개선해 농민들이 직접 농지를 거래할 수 있도록 바꾸려 하고 있다.
중국 농민들은 마을단위로 등록된 농지를 임대받아서 경작하고 있다. 따라서 농지거래는 마을회의를 거쳐서 이뤄진다.
그러나 실제 농지거래 권한은 지방정부가 지니고 있으며, 거래수익 또한 지방정부가 갖는다.
중국의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농지체계를 개혁해서 농민들이 직접 토지소유권을 이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중국 농업정책의 변화는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이농현상 심화, 그리고 소득증가로 인한 축산물 소비 증가와 사료곡물의 수입의존도 증대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쌀과 밀의 자급기반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시장개방에 대처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 | 중국 천진시 중심부에 진출한 롯데백화점. 바로 맞은 편에 신세계백화점이 위치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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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중국 농업의 여건과 정책 변화는 국내 기업들의 중국 농업시장 진출에 변수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기업의 해외농업 진출은 현지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들여와 식량안보에 보탬을 준다는 취지에서 추진돼 왔다.
국내 기업의 해외농업 진출은 2007년까지는 몇몇 기업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이뤄져 왔으나 2008년부터 해외농업개발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현재 등록한 업체수가 110개에 달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참여가 두드러지고 있다. 대우 인터내셔날, 대우 로지스틱스, 삼성물산, LG상사, 현재중공업, NH바이오 등이 러시아 인도네시아 마다가스카르 캄보디아 등지에 진출했다.
해외농업진출을 모색하는 국내 대기업들의 참여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해외농업개발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우리 기업의 해외농업진출은 대규모 농지 점유에 따른 신식민지 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실제로 대우 로지스틱스가 마다가스카르에 130ha의 농지를 확보했으나 국제기구와 NGO, 그리고 자국 국민의 저항 등으로 대통령이 물러나고 계획이 무산되는 일이 벌어졌다.
국제 NGO들은 기업이 대규모 농업을 추진할 경우 많은 소농들이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종다양성을 해친다고 비난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진출한 캄보디아의 경우 사회갈등이 심화하자 지난해부터 외국인에 대한 토지양여를 중단했다.
해외농업개발을 통한 국내 식량안보 달성 또한 당초 기대와는 달리 여의치 않다. 해당국이 세계곡물 파동에 따른 자국 식량사정으로 인해 반출을 금지시킬 경우 국내에 들여올 수 없기 때문이다.
막대한 농지개발 비용과 영농경험 부재도 우리 기업의 해외농업개발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정기환 농촌발전연구원장은 이에 대해 “우리 기업들은 해외농업진출때 지나치게 농지에 집작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농지확보와 개발, 그리고 물류비용을 고려할 때에 현실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정 원장은 “해외농업개발에 의해 생산한 농산물의 국내 반입이 어렵다면 투자 대상국의 내수시장을 목표로 농산물을 생산하고 가공·판매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초기투자비가 많이 드는 농지확보와 개발 보다는 그 나라의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가공·유통하는 것을 우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해외농업 진출을 추진하는 기업들이 무리한 농지 확보보다는 그 나라의 식량유통시장을 먼저 공략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얘기다.
그는 투자 대상국의 유통망을 구축한 다음, 농지를 확보해서 생산과 가공, 유통, 나아가서 수출입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사업의 전방위 효과가 더 커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수많은 인구를 거느린 중국의 급격한 도시화는 거대한 시장을 낳고 있다. 이에 따라 신세계, 롯데, 이마트 등 국내 대형 유통업체들이 중국 시장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이와 맞물려 급격한 이농현상과 사료곡물 수입 증가, 그리고 식량기반의 지속적인 확대라는 숙제를 떠안고 있는 중국 정부는 대규모 상업농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의 기업들이 해외 농지를 헐값에 확보하고 생산한 농산물을 국내에 들여오겠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먼저 중국 농산물 유통망 확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 농업기반을 유지하고 지역의 농협을 지원하는 농협중앙회가 수도권을 비롯한 농산물 유통시장에서 대형마트보다 우위를 점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국내 기업들이 농산물 유통망을 구축과 더불어 영농사업을 벌일 때에 비로소 온전하게 중국의 농업시장 진출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정책과 국가 이익에 부응하면서, 동북아의 식량시장을 경영하겠다는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다면 우리 기업들이 동북아의 식량수급 안정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경제적인 이익 이상의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의 농업시장에서 영향력을 지닌다는 것은 이윤확보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농업은 중국을 지탱하는 기반이자 문화이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농업 경영을 통해 여러 나라들과의 상호이익을 증진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드높이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 기대한다.
김성훈 기자 newsking@agrinews.co.kr @에그리뉴스 http://agr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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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최종편집일:2024-03-15 11: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