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知’ 판치는 '農盲'의 나라
지난해 우리나라 무역규모가 세계 8강에 진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선진국인가?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해 자신있게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 나라가 선진국이냐? 그렇지 않느냐?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잣대는 다름 아닌 농업에 대한 인식이다. 유럽은 소의 성장호르몬을 남발하는 미국과 90년대 중반부터 무려 10년동안 무역전쟁을 벌였고 당시 타임지 표지를 워(WAR)라는 타이틀로 장식했다.
그 때 유럽인들은 세계무역기구(WTO)패소하면서 막대한 대가를 치르면서도 "식품의 안전성은 국민의 의식에 비례한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껏 유럽은 어린 쇠고기 고급 부위에 한해 아주 적은양의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고 있다.
일본은 일찌감치 6차산업을 부르짖으며 농업의 범위를 크게 확대했다. 농산물 유통 및 외식업은 일본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장으로 자리하고 있고, 애그리즘(agrism)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많은 젊은이들이 귀농 귀촌의 꿈에 부풀어 있다.
'농업은 조리의 시작이고, 조리는 농업의 완성'이라는 범국가적인 식농교육의 구호만 봐도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한미FTA직후 일본 TV에선 통상전문가, 그리고 대학교수들이 미국을 축으로 일본을 비롯한 환태평양의 11개 국가들이 논의하는 다자간자유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놓고 한국과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러선 안된다며 정부 관계자를 거세게 몰아부쳤다.
묘한 사실은 당시 TV토론에서 정부 관계자는 반론을 제기하기 보다는 패널의 의견에 수긍하고 경청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날 토론에 참석한 패널들은 통상전문가들이었고 농업계 관계자들은 없었다. 비농업계 종사자였던 사회자를 비롯한 패널들은 마치 우리나라의 전농(농민회)을 연상케 했다.
캐나다에선 앨버타주 젊은 농민들의 농업비즈니스를 후원하고 그들을 지지하기 위한 팜보이스프로젝트(Farm Voices project)운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재단인 팜온재단(farmOn Foundation)이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단순히 생산자 차원의 운동이 아니라 전세계의 소비자 시민들을 대상으로 젊은 농민들의 후원을 호소하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이 시작된 이탈리아에선 농어민을 가리켜 지구의 지식인이라 추켜 세운다.
스위스 과학자들은 엄지 손가락을 치겨들고 제 나라 농민들에게 존경심을 표시했으며, 대표적인 농업국가인 프랑스는 돼지고기를 말하면서도 자국 농민들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잊지 않는다. 심지어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은 농촌이 없는 프랑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한치의 물러남이 없었다. 우리 정부가 농업 강대국들과의 FTA에 몰두하고 있을 때, 프랑스 정부는 지난 2010년 11월 프랑스 전통식 식사법을 세계 유네스코 무형 문화 유산에 올리며,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
여기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40살이하 청년들의 귀농을 돕기위한 영파머(Young farmer)직불제를 시행키로 결의했다.
미국은 어떠한가? 일찌기 애그리비즈니스라는 이론적인 배경을 만들어 내며 농업을 국가 최대의 산업으로 끌어 올렸다. 이 애그리비즈니스의 개념에 따르면 비료 종자 농기계 등 농자재 산업을 비롯해 식당, 대형마트, 편의점, 백화점, 생명공학, 의약, 화장품에 이르기 까지 모두 농업의 범위에 포함시켰다. 그래서 미국의 농무부는 식의약청을 비롯한 여러 산하기구를 거느리며 국방부와 함께 슈퍼부처로 군림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스스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 자위하는 이들이 이끌어 가는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단단한 기반공사를 뒤로 한채 급하게 빌딩만을 쌓아 올린 것인 아닐까? 모든 산업의 시작인 농업이 불안한데 어찌 다른 산업의 기초가 제대로 닦여 있다고 안도할 수 있을까? 기초가 흔들리는데 그 위에 황금으로 집을 짓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것이다.
누군가 한국경제의 미래를 묻는다면 농민들의 살림을 바라보라고 일러주고 싶다. 소 키우는 농민들이 걱정없이 잘 살고 있다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그만큼 밝다는 얘기다. 문제는 지금 농민들은 정부의 방치아래 줄도산의 위험에 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다음은 과연 어떠할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금 세계의 정부라 일컫는 국제연합(UN)의 사무총장이 한국인 반기문씨라는 것을 익히 알면서도 UN의 산하기구중 가장 규모가 큰 기구가 국제식량농업기구(FAO)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우리 사회의 '농맹'현상은 출처도 모르는 음식을 아무 생각없이 먹어대는 '식맹'을 양산하고 있다.
다시금 유럽인들의 말을 되뇌어 본다. "식품의 안전성은 국민의식에 비례한다" 15년이 넘도록 유업체들이 값싼 수입 모조분유로 아기들이 먹는 조제분유를 만들어 팔고, 유럽에선 광우병 위험물질로 분류하고 있는 미국산 소 내장과 소머릿고기를 굽거나, 곰국에 말아 먹고 있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 농업에 무지한 까닭이다.
유럽이나 일본사람들이 이런 한국을 들여다 본다면 아마 놀라움을 넘어서 경악했을 것이다. 성추행은 여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농산물 유통구조개선과 물가관리를 섞어 말하는 정부 고위관리들의 무지 또한 정도가 지나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길이 없다.
요즘 세계의 언론들은 대통령의 방미를 두고 희화하는데 쏠쏠한 재미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의 유력 통신사가 조작한 박근혜 오바마 양국 정상의 악수사진이 그러하고, 성추행은 물론 자국의 동포들을 하인부리듯 하는 정부 고위관리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갑을 문화를 비꼬고 있다.
지구상에서 보기드문 경제발전을 일궜으나 정작 자신의 뿌리를 돌보지 못하는 졸부들이 '갑'행세하느라 먹는 기쁨마저 내팽게 친 무지의 나라, 그래서 자국 산업의 시작이자 뿌리인 농민들을 도시로 내쫓으며 광우병 위험물질을 돈주고 수입해다 사람들에게 먹이는 나라, 아기들이 먹는 조제분유가 뭘로 만들었는지도 관심이 없는 나라, 그래도 무역 8강. 한국이 선진국인가?
사람이 먹는 음식의 질보다 돈 먼저 따지는 사람들이 과연 근본을 잊은 '농맹'의 나라가 곧 '무지'의 나라임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리까리할 따름이다.
[사진설명]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의 한 장면. '맛의 시작'이라는 책표지 다음에 바로 등장한 그림은 바로 농민 농촌 농업이었다. 제대로 만든 작품이다. 위 그림은 <식객> 1권 첫 부분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허영만 화백, 그는 맛의 뿌리를 음미할 줄 아닌 예술인이다. 단 한페이지에 이렇듯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김성훈 newsking@agrinews.co.kr @ 에그리뉴스 agrinews.kr |
기사최종편집일:2024-03-15 11:10:01
